국산차는 자연흡기엔진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디젤엔진은 기본적으로 터보를 얹고 있으니 예외. 가솔린엔진은 터보차저의 비율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다고 할 수 없다. 반면에 수입차로 눈을 돌리면 자연흡기엔진이 드물다. 미국과 일본 브랜드를 제외하면 자연흡기는 씨가 마를 정도다. 그들은 왜 자연흡기를 버리는 걸까. 같은 배기량으로 힘을 더 낼 수 있고, 연료효율은 높아지니까.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터보차저, 수퍼차저는 대표적인 차징(Charging) 기술이다. 터보차저는 버려지는 배기가스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기술이고, 수퍼차저는 엔진이 만들어내는 동력을 이용해 공기를 압축하기에 힘을 뺏는다. 여기까지 들으면 수퍼차저보다 터보차저가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 모두 갖고 있는 매력이 있다. 물론, 두 가지 기술을 모두 품고 있는 트윈차저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터보차저 모델은 메르세데스-AMG GLC 43이 맡았다. F1에 터보차저가 다시 도입된 후, 줄곧 우승을 놓치지 않았으니 이만한 브랜드도 없다. GLC 43은 V6 3.0리터 엔진에 바이터보시스템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이’는 굿바이에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Bi’, 즉 두 개를 뜻한다. 트윈터보와 똑같은 말이다.
터보차저의 기본적인 개념은 이렇다. 폭발을 일으킨 실린더에서 배기가스를 내보내면, 터빈부 임펠러를 돌린다. 이에 맞물린 압축부 임펠러가 같이 회전하면서 공기를 압축해 인터쿨러를 거쳐 실린더로 보낸다. 인터쿨러를 거치는 이유는 압축된 공기온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그대로 실린더로 들어가면 성능을 내지 못하기 때문. 기본적인 터보차저 원리다. 하지만, 터보의 수, 크기 등을 고려해 세팅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성능과 연료효율은 크게 달라진다.
터빈 크기가 중요한 이유는 터보랙과 연관이 있다. 터빈이 크면 압축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지지만, 배기량이 작은 엔진에서 나오는 가스가 큰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는 분당회전수가 제법 올라야만 가능하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충분히 압축되지 않아 제대로 된 출력을 낼 수 없는 터보랙.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터빈으로 들어가는 배기가스를 좀더 빠르게 넣을 수 있게 통로를 좁히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바람개비를 들고 입을 크게 벌려 ‘하~’ 불면 쌩쌩 돌지 않지만, 입을 오므려 ‘후~’ 불면 재빨리 회전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터빈이 작으면 터보랙은 줄어들지만, 터빈이 너무 빨리 돌아 열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고속주행이 불리해진다.
터보를 두 개 올린 모델 대부분은, 크기가 작은 것과 큰 것 각각 하나씩이다. 터보가 작으면 배기가스가 힘차게 나오지 않아도 빨리 압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rpm이 오르면 큰 터보도 적극적으로 일하면서 어느 회전대에서도 대응할 수 있다.
GLC 43에 올라간 V6 3.0리터 엔진은 근래 경험한 엔진 중 가장 좋다. 출력은 367마력, 최대토크는 53.0kg·m. 특히, 2천500rpm부터 터지는 최대토크는 터보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세팅이 좋다. 분당회전수가 오를수록 확실히 느껴지는 회전질감은 가속페달을 고문하게 한다. 거기에, AMG 63만큼은 아니지만, 멀리 울려 퍼지는 배기사운드는 AMG라는 마크를 확실히 달아도 좋다. SUV지만, 제대로 달리는 핫해치를 몰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대중성과 고성능의 절묘한 타협, 3.0리터 바이터보엔진은 그렇게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터보랙은 깔끔히 잊어도 좋다며 수퍼차저가 손짓한다. 레인지로버는 자그마치 5.0리터 엔진에 수퍼차저를 올렸다.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수퍼차저엔진은 재규어랜드로버 모델뿐. 수퍼차저를 떼어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데도, 그들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레인지로버에 올라간 수퍼차저는, 자체개발한 트윈보어텍스시스템(TVS). 벌써 6세대에 이른다. 그렇다,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차저가 붙는다. 수퍼차저는 압축공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터보차저와 같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다. 터보차저는 버려지는 배기가스를 이용하는 반면, 수퍼차저는 엔진의 힘을 빌린다. 장점으로는 터보차저에서 생기는 터보랙이 거의 없어 자연흡기엔진 같은 느낌을 주고, 압축공기로 폭발력이 강해져 엄청난 추진력을 보여준다. 단점으로는 엔진 힘을 사용하기에 고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정숙하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엔진음. 레인지로버에 오르면 왜 이 차가 인기가 좋은 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기어 다이얼을 돌려 차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거대한 전함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에도 가속페달 밟는 양에 따라 몸을 놀리기 시작한다. 응답 지연은 전혀 없다. 수퍼차저의 장점이 그대로 녹아 있다. 두 개의 수퍼차저는 분당회전수가 낮을 때, 작은 녀석이 공기를 압축하고, 본격적인 주행에 들어가면 두 개 모두 임무를 수행하며 거구를 채찍질한다.
0→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4초.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무게가 2.6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수퍼차저가 고속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레인지로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시속 225km에서 전자장치가 속도제한을 걸지만, 그때까지 어떠한 저항도 없다. ‘배기량이 깡패’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레인지로버의 잔잔한 배기사운드는 웅장했으며, 깨끗한 회전질감이 고급스러움을 말해줬다. 얌전함과 우아함을 겸비했지만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힘. 어떠한 험로도 지형에 맞는 버튼을 눌러 아무렇지 않게 주파하는 능력. SUV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몰고 있다는 느낌. 2억 원이 넘는 SUV의 위엄인가? 물론, 이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 중 과격하게 모는 운전자는 거의 없겠지만, 언제든지 준비가 돼있는 모델이 바로 레인지로버 5.0 수퍼차저다.
자 그럼, 터보차저와 수퍼차저를 동시에 품고 있는 XC90 T6는 어떨까? 사실, 국내에 소개된 트윈차저는 폭스바겐 골프 1.4리터 TSI 엔진이 먼저다. 터보차저가 메인으로 일을 하고, 큰 힘을 필요로 할 때 수퍼차저를 돌려 터보랙을 최소화했다. 또한, 분당회전수가 어느 정도 차오르면, 수퍼차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터보차저에 모든 걸 위임했다. 터보가 원활하게 돌아갈 때까지 수퍼차저가 나섰던 것.
그렇다면 XC90 T6는 어떻게 작동할까? 참고로 엔진은 2.0리터다. 덩치에 비해 배기량은 작지만, 트윈차저 조합이 얼마만큼 상쇄시켜 줄 지 궁금하다. 수퍼차저는 운전자가 13.2kg·m 이상의 토크를 필요로 할 때 일을 시작한다. 분당회전수는 2천400 이하에서. 이 조건에 맞지 않으면, 그냥 자연흡기엔진과 같다. 2천400rpm이 넘어가면, 배기가스가 원활하다고 판단하기에 터보가 일을 이어받으며 수퍼차저는 작동을 멈춘다. 하지만, 터보차저가 만들어내는 압축공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수퍼차저도 일을 돕는다. 이 구간이 수퍼와 터보가 동시에 임무를 수행하는 트윈차저 영역이다. 3천500rpm이 넘으면, 수퍼차저는 무조건 작동을 멈춘다. 터빈을 원활히 돌리기에 충분한 배기가스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엄청 복잡하지만, 운전자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주행할 필요는 없다. 물론 터보가 작동하는지, 수퍼가 작동하는지 계기반에 나오지도 않는다. 운전자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정밀하게 업무를 인수인계 한다. 이론적인 설명은 여기까지.
XC90 T6 아이들링은 2.0리터 엔진답지 않게 조용하고, 주행을 시작하면 안락한 승차감에 바로 푹 빠진다. 차저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가속페달에 힘을 준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딘 반응이다. 킥다운 스위치를 건드려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그나마 다이내믹모드로 바꾸면 빨라지지만, 다소 아리송한 반응이다. 제원상 출력은 320마력, 최대토크는 40.8kg·m. 2.0리터 엔진에 트윈차저를 결합했다지만, 생각보다 센 출력이다. 물론 그보다 더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도 있지만, 그건 달리기 위해 만든 모델이다.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지 않는 이상 어느 영역에서도 꾸준하게 밀어주는 힘이다. 4천500rpm이 넘어가면 터보는 작동을 멈춘다. 순전히 자연흡기엔진이 돼버린다. 급가속에서는 다소 더딘 반응이지만 이외에는 나쁘지 않다. 0→ 시속 100km 가속까지 6.5초면, 괜찮지 않은가? 그래도 부족하다면, T8이 기다린다. 트윈차저와 전기모터의 결합이다. 400마력의 합산출력으로 0→시속 100km 가속은 단 5.6초, 레인지로버 수퍼차저보다 0.2초 느릴 뿐이다. XC90 T6가 주춤한 이유는 배기량의 한계다. 물론, 기술로 극복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승차감과 연료효율 등을 고려해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차저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터보차저는 터보랙을 없애기 위해 전기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압축공기를 탱크에 저장했다가 필요시 순식간에 터빈을 돌리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1천r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모델이 등장했다.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터보랙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배기량에 어울리는 수퍼차저 역시 꾸준히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며 웅장함을 과시한다. 트윈차저는 다소 생소하지만, 협업을 통해 배기량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 가지 차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무엇이냐고? 문제는 돈이다. 돈이 많다면 주저 없이 수퍼차저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돈이 쌓일 일은 없기에 다음 차는 터보차저가 될 확률이 99퍼센트다. 가솔린터보가 아닌 디젤터보 말이다.
출처:기어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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