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화창한 날씨를 뽐낸 주말, 지프 캠프 2017에 다녀왔다. 지프 캠프는 올해로 13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오프로드 드라이빙 축제. 랭글러와 체로키, 레니게이드 등 다양한 지프 라인업과 함께 험로 성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난해까진 지프 보유 고객만 참가할 수 있었지만, 올해엔 지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글 강준기 기자(joonkik89@gmail.com)
토요일 아침 7시. 행사가 열리는 강원도 횡성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들이 정체 때문에 약 3시간이 흘러 행사장에 도착했다. 간단한 조작 방법을 교육받고 곧바로 시승 코스로 향했다. 참가자들은 나무다리, V계곡, 시소, 트랙션 등 장애물을 통과하는 ‘챌린지 파크’, 스키 슬로프를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피크 코스’, 오직 랭글러만 갈 수 있는 ‘와일드 코스’ 등 다양한 코스를 선택해 경험할 수 있었다.
차종 역시 고를 수 있었는데, 먼저 그랜드 체로키 75주년 모델에 올라탔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로드테스트>가 시승한 차다. 당시 테스트하지 못한 험로 주행 능력을 시험해볼 절호의 찬스였다.
우선 선수 소개부터. 이 차는 지프가 탄생 75주년을 맞아 특별하게 빚은 모델이다. 안팎을 보면 ‘SINCE 1941’이라는 배지가 곳곳에 붙어있다. ‘크롬 일변도’였던 겉모습은 기름기를 쫙 뺐다. 가령,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엠블럼, 사이드미러 커버 등에 쓰인 크롬을 벗기고 고급스러운 브론즈 페인트를 칠했다. 덕분에 우람한 골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프(Jeep)의 시작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자국 내 전차개발이 금지되자 사륜구동 개발에 착수했다. 1937년 이러한 노력 끝에 탄생한 모델이 G-5다. G-5는 오프로드의 강자, 메르세데스-벤츠 G-바겐의 바탕이 된 모델. 당시 전쟁의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 등 연합군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기동성이 좋았다.
독일의 월등한 기동력을 체감한 미국은 G-5에 버금가는 사륜구동 차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지형에도 달릴 수 있으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자동차가 필요했다. 미 국방성이 내놓은 입찰 조건은 사륜구동 장치, 차체 무게는 1,300파운드(약 589㎏, 이후 2,160파운드로 조정)를 넘지 않아야 하고 적재중량 0.25t 이하에 3명의 승차정원을 만족해야 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에 2개 업체가 입찰에 응했다. 바로 윌리스 오버랜드(Willy-Overland)와 아메리칸 밴텀(Bantom)이었다. 나중엔 포드(Ford)도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승자는 윌리스 오버랜드가 차지했다. 지프의 시작이자, ‘1941’의 비밀이다.
지프의 활약은 대단했다. 산악전과 기습작전에서 특유의 기동력으로 독일 G-5에 맞먹는 활약을 펼쳤다. 각종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수송차나 부상자 운송을 위한 구급차로 개조하기도 했다. 또한, 전쟁터에서 보닛을 임시 테이블이나 식탁, 연설대 등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다시 그랜드 체로키로 건너오자. 옆모습은 전통적인 SUV다운 존재감을 뽐낸다. 차체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825X1,935X1,765㎜. 실내 공간을 가늠할 휠베이스는 2,925㎜다. 도어 손잡이는 차체 색상과 같은 흰색 페인트를 칠했고 윈도우 라인은 크롬 대신 블랙 하이글로시를 썼다. 휠은 무려 20인치. 깊은 펄의 브론즈 컬러를 머금었다. 타이어는 네 발 모두 265/50 R 20 사이즈를 신었다.
겉모습 감상을 끝내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20분 남짓한 시승이라 잠재 능력을 모두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강력한 등판 성능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우선 엔진의 힘은 차고 넘친다. V6 3.0L 디젤 터보 심장은 미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 워즈오토(WardsAuto)가 뽑은 ‘2015 10대 엔진(10 Best Engines for 2015)’에 선정된 명기다. 8단 자동변속기와 짝지어 최고출력 250마력, 최대토크 56.0㎏·m를 뿜는다.
사륜구동 시스템을 4L(로우 기어)에 놓고 코스에 진입했다. 참고로 일반 그랜드 체로키는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간다. 그러나 75주년 모델은 전통적인 쇼크업소버를 물렸다. 때문에 그랜드 체로키의 자랑인 ‘콰드라-리프트(Quadra-Lift®)’ 시스템도 없다. 그러나 불만은 없었다. 차체 높낮이를 조절할 순 없지만 진흙과 바위 등 노면의 질감을 또렷이 느낄 수 있어 훨씬 재미있었다.
두 번째로 고른 차종은 지프의 아이콘인 랭글러다. 그 중에서 V6 3.6L 가솔린 심장 품은 2도어 루비콘 모델을 골랐다. 이 차엔 ‘스웨이 바’라고 부르는 비장의 버튼이 들어갔다. 스웨이 바는 독립 현가장치의 좌우 서스펜션을 하나로 연결하는 쇠막대다. 탄성을 이용해 한쪽 서스펜션에만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을 반대쪽 서스펜션에도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루비콘엔 스웨이 바를 분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서스펜션 트레블이 최대 25%까지 늘어난다. 따라서 네 바퀴가 끝까지 노면을 붙들고 엔진의 힘을 최대한 쏟아낸다. 여기에 4L 모드를 곁들이면 그야말로 ‘무적’상태로 돌입한다. 웬만한 SUV로는 엄두 못 낼 바위 코스에서도 사뿐히 지르밟고 나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처럼 랭글러에겐 요즘 차가 갖지 못한 특별한 매력이 있다. 겉모습은 투박하고 실내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맛있는 고기와 큼직한 텐트를 싣고 남들이 가지 못할 특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지프와 함께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프의 지속가능성에 물음표가 생긴다. 랭글러 루비콘에 들어갔던 2.8L 디젤 엔진은 유로6에 대응하지 못해 2015년을 끝으로 단종 됐다. 그래서 이번 시승엔 전부 가솔린 버전만 자리했다. 과연, 전 세계적인 전동화 추세에 맞춰 지프의 개혁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출처:로드테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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