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의 중요성, 그리고 각성
난 여태껏 몰랐었다. 모하비의 영어 스펠링이 Mohave라는 것을. 당연히 모하비 사막을 뜻하는 Mojave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긴 모하비를 Mohave라고 쓰기도 하고 모하비 인디언을 말할 때는 Mohave라고 부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굳이 왜 더 널리 알려진 이름인 Mojave를 놔두고 굳이 Mohave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다. 혹시 무슨 사연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의 나래는 한 없이 날아간다. 그리고 시승을 마친 뒤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혼자 흥분한다.
생각 또 하나. ‘틀린 것과 다른 것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무조건 내가 옳다는 이기심, 무조건 대세가 옳다는 안전제일의 생각이 이런 미묘한, 그러나 커다란 생각의 오류를 만들어낸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내 주장만 펼치기에 바쁘지만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내 생각보다는 대다수의 생각인 대세에 순응하는 이율배반에 빠지고 마는 우리들이다. 오랜만에 모하비를 시승하면서 틀린 것과 다른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어떻게’ 보다는 ‘왜’ - 모하비의 연륜이 알려주는 인생 철학
오랜만에 만난 모하비는 이렇듯 평범한 시승기보다는 좀 더 깊은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모하비가 사람으로 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종족의 후예이기 때문인가. 모하비는 단순하게 성능이 ‘어떻고’, 승차감이 ‘어떻고’, 편의 장비가 ‘어떻고’라는 방법론이나 수준의 평가보다는 이것은 ‘왜’ 이렇게 만들었고 이것은 ‘왜’ 그냥 두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기아차는 ‘왜’ 모하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일까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귀결되는 존재론의 문답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오늘의 시승기는 선문답이 될 듯하다.
모하비가 처음 출시된 것이 2008년이니까 금년이 10년째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바뀐 적이 없으며 파워트레인을 중심으로 라인업은 꾸준히 변해왔다. 처음에는 터보 디젤 V6 3.0리터 엔진과 ZF 6단 자동 변속기로 4륜 구동과 후륜 구동 두 가지 모델로 시작했던 모하비는 3.8리터 V6와 4.6리터 V8 가솔린 모델을 추가하며 기함의 위세를 더했다. 2011년식에서 디젤 엔진의 대규모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유로 5를 만족시키는 S2 엔진과 현대 파워텍의 후륜 구동용 8단 자동 변속기가 적용된 것이다. 출력과 토크는 각각 250마력과 55.0kg.m에서 260마력과 56.0kg.m로 늘어났다. 매끈하고 부지런한 8단 자동 변속기는 모하비의 기함의 품격과 잘 어울렸다.
작년에 파워트레인이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하비의 단종을 예상했었다. 단 한 차종을 위하여 유로 6 V6 디젤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하비는 반 년 가량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SCR 시스템으로 유로 6를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빡빡한 배출 가스를 만족시키면서도 오히려 엔진의 감각은 풍성해졌다. 최대 출력은 260마력으로 같고 토크가 56.0에서 57.1kg.m로 약간 늘었을 뿐인데 감각상의 차이는 훨씬 컸다. 그것은 토크 곡선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전의 유로 5 엔진은56.0의 토크를 2000rpm에서만 나왔던 반면 새 엔진은 1500부터 3000rpm까지 57.1의 최대 토크가 유지된다. 특히 크루징 시 자주 사용하는 1500rpm에서의 토크는 46.0대 57.1kg.m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개마고원처럼 평탄한 토크 곡선과 부드러운 8단 자동 변속기가 만난 모하비의 주행 감각은 풍요롭다. 이런 여유로움은 완숙의 경지에 도달한 기함급 리무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체 불가의 감각이다. 요즘의 모델들이 동력 성능과 효율에서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풍요로운 아날로그적 풍요로움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소음과 진동 역시 럭셔리 리무진의 감각이다. 최근의 다운사이징 4기통 엔진으로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V6의 감성품질을 모하비는 십분 활용하고 있다.
◆ Oldies, but Goodies - 연륜이 묻어나는, 그러나 세월을 비껴가는 디자인과 품격
디자인에서도 모하비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조급함이 없다. 직선 중심의 단정함이 주제인 외관 디자인은 혹시 심심할까봐 오프로더에 걸맞은 디자인 포인트들이 앞뒤 범퍼와 사이드 스텝에 더해졌다. 인테리어도 작년에 페이스리프트 때에 계기반과 스티어링 휠, 센터 페시아 등에 업데이트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요즘의 현란한 디자인은 아니다. 인포테인먼트와 오토 에어컨이 자리잡은 센터 페시아, 읽기 쉬운 계기반, 그리고 게이트 방식의 기어 셀렉터 레버와 시트 냉난방 등 몇몇 스위치가 단순하게 자리잡은 센터콘솔 등은 확실하게 구획 정리가 되어 있다. 통합 디자인이 유행인 요즘 인테리어 디자인에 비하여 일체감보다는 기능적 구분을 강조한 명료함을 추구한 콘셉트다.
이렇듯 모하비 디자인에서 한 눈에 사람을 휘어잡는 젊음의 유혹은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내 옆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친구, 아니 전문 교육을 받은 집사의 믿음직함이 배어 나온다. 세월은 어차피 다가왔다 지나간다. 세월을 얼마나 잘 보냈는가가 결과를 좌우할 뿐이다. 경험과 연륜으로 남느냐, 아니면 노화와 쇠락으로 사라질 것인가만 남는다.
그리고 모하비에는 완벽한 조립 품질이 주는 질감이 남았다. 아무리 오프로드에서 거칠게 다루어도 모하비의 인테리어 내장재에서는 어떤 잡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특히 모하비의 시트는 진정 럭셔리 리무진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눈보다 오감이 모두 즐거운 질감의 완성이 모하비 디자인의 수준인 것이다. 단지 투박한 감촉의 몇몇 스위치들과 서걱거림이 아쉬운 다이얼 스위치들에서 느껴지는 메마름이 옥에 티. 그러나 큼직큼직한 스위치의 디자인은 섬세하진 않아도 기능적이고 정통 오프로더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남겨둔 듯하여 반갑다.
◆ 도시형 SUV? No, 모하비는 진짜 SUV
잘 익은 연륜의 농밀함은 바퀴가 구르는 순간에 또 다가온다. 디젤 SUV인데도 바퀴가 땅 위를 구르는 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끈하다. 이 정도라면 오프로드 스타일 패키지를 선택해도 타이어의 거칢이 그리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오프로드에 들어가도 땅의 굴곡은 느껴지지만 표면의 거칠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모하비는 정말로 흙을 밟으면 참 행복해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수십 년 사용한 무쇠 손잡이가 세월의 덕으로 광이 나는 듯한 묵직한 매끄러움이 참으로 고급지다. 모하비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포장도로에서 요철을 만날 때의 승차감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큰 충격은 잘 해치우는 모하비가 작은 요철에 안절부절. 이 부분만 해결한다면 모하비는 정말 전천후 리무진이 될 수 있을 텐데. 정통 오프로더인 모하비에게는 아직도 포장도로가 낯선 모양이다.
◆ 세상을 등질 수는 없는 법 - 모하비의 스마트 업데이트
이번 2018 모하비는 이런 세월의 미덕은 보존하되 세월에 떠내려가지는 않도록 첨단 사양의 업데이트에 집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행 보조 장비를 대폭 적용한 것이다. 후측방 경보 시스템은 전 트림 기본으로 적용하고 전방 추돌 경보, 차선 이탈 경보, 하이빔 어시스트를 하나로 묶은 ‘드라이브 와이즈’ 패키지를 옵션으로 제공한다. 이제는 어라운드 뷰 모니터를 선택할 수도 있고 많이 편리해졌다. 하지만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주행 보조 장비들은 경보를 할 뿐 능동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한다. 테일 게이트도 손으로 내리면 마지막에만 자동으로 잠가줄 뿐 요즘 소형 크로스오버도 있는 파워 테일 게이트는 없다.
◆ 요즘 찾아보기 힘든 오리지널의 맛과 멋
모하비는 확실히 요즘 트렌드와는 달랐다. 경쾌하고 세련된 쪽 보다는 묵직하고 손맛이 좋은 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잘못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많은 면에서 숙성의 미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틀린 것, 정확하게는 나온 지 오래된 모델이기 때문에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많은 것이 요즘 크로스오버 SUV와 다를 뿐, 틀린 것은 거의 없는 모하비였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모하비를 바라보자. 기아차에서 추천하는 VIP 트림의 가격은 4,390만원. 옵션을 좀 더하면 4,600만원 정도가 적당한 가격대가 된다.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국산 대형 고급 승용차를 살 수 있다. 하지만 V6 디젤 엔진과 풀 타임 4륜 구동 시스템을 실은 대형 SUV를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면 괜찮은 가격이 아닐까? 사실 이 가격은 수입차 베스트셀러였던 폭스바겐 티구안 프리미엄과 거의 비슷하다. 티구안은 모하비보다 두 세그먼트 아래의 차종이다. 한 급 위의 베스트셀러인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이미 6천만원대다. 사실 모하비의 고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10년이 지난 모델이 매 달 1,500대 가까이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결론은 이렇다. 모하비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잘 숙성된, 비싸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저렴한, 고급차의 맛이 있지만 사실은 정통 오프로더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흘러가더라도 이런 차 하나쯤은 남아있어도 좋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 SUV의 강자인 기아차가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장수 모델인 모하비가 반갑다.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
아 참, 글 첫머리에 던졌던 질문이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이미 모하비는 요즘 트렌드와 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답을 드렸다. 그리고 첫 번째 Mojave가 아닌 Mohave를 이름으로 사용한 이유는? 난 Mohave라는 스펠링을 볼 때마다 More have라는 말로 보인다. 모하비는 보기보다 많은 것을 주는 차기때문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출처:오토앤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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